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주당(튀르키예 1946년) (문단 편집) === 군부 쿠데타와 당 해산 (1960) === 1959년에 있었던 이뇌뉘 공격 사건에 대해 제1야당 공화인민당에서 국회 차원에서의 조사를 요구했지만, 멘데레스 총리와 민주당은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공화인민당이 군부와 접촉해 쿠데타를 시도하고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1960년 4월 27일 별도의 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조사위원회는 민주당 의원들로만 구성되었고 평결권과 함께 공소권과 검찰권을 동시에 부여하는 초법적 권한을 가졌는데[* 심지어 위원회의 평결은 법원을 통한 항소도 불가능하게 만들어놨다. 사실상 이뇌뉘와 공화인민당을 초법적으로 축출하려고 시도했던 셈.], 이뇌뉘는 이에 대해 반대 연설을 하면서 "이것은 민주정권의 길을 떠나 억압정권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국회에서 추방당한다. 이에 반발해 1960년 5월 학생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거세게 일었고, 결국 [[제말 귀르셀]] 중장이 이끄는 세속주의 군부가 5월 27일, [[쿠데타]]를 일으켜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관공서와 방송국을 장악하고 바야르 대통령, 멘데레스 총리 등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을 체포했다. 뒤이어 1960년 9월, 군부 주도 국민통합위원회에서 민주당을 강제 해산시켰다. 이때 체포된 주요 인사들은 야시아다 섬에 수감되어 군사재판을 받았고, 처음에는 바야르 대통령을 비롯한 당내 주요 인사들이 모두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한 [[제말 귀르셀]]과 야당 당수 이뇌뉘의 요청으로 바야르를 비롯한 일부는 종신형으로 감면받았지만 의원내각제 체제 하에서 정부의 실권자였던 멘데레스 총리는 끝내 감형되지 않았고 1961년, 임랄르 섬에서 [[교수형]]을 집행당해 세상을 떠났다. 그외에도 14명이 추가로 사형이 집행되었고, 살아남은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종신정치활동 금지령이 내려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